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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독서

by brightwing1218 2021. 12. 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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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근, 현대사에서의 경제 이벤트들을 흐름 순으로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 특히 경제를 조절하는 밸런스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종합적으로 다뤘으므로,
    큰 틀에서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 책이 시대 순으로 사건을 설명했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큼직한 주제 별로 역사적인 이벤트들을 몰아넣어 보았다. 

교환의 매개인 화폐의 조건

  • 분절 가능성, 보존성, 높은 사용 가치, 진위판별의 용이성이다.
  • 앞의 세 개의 이유로, 귀금속은 화폐로 기능했으나, 순도와 함량 측정이 어려워 진위판별이 어려웠다.
  • 이에 '국가 권력이 보증하는 형태의 증서'인 화폐가 출현했다.
  • 다만, 지폐는 정부의 권위 하락이나 너무 많은 화폐 발행이 있을 경우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므로, 
    정부 권력이 매우 강하거나 발달된 상업 시스템 기반이 있지 않을 경우 출현, 일반화되기 어렵다.

중앙은행의 필요성

  1. 중앙은행은 시장에 풀린 돈의 많고 적음에 따른 밸런스 조정에 필수적이다.
    •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약 100년 동안 스페인은 금, 은 등의 귀금속 광산들을 연이어 손에 넣는 행운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통화공급이 과해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게 되었고, 수출품들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수입이 과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더해, 계속된 정복전쟁으로 인해 물품 생산을 담당할 장정들이 전부 전쟁으로 차출당했고 폭발적인 물품 수요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통화는 계속 국가 밖으로 줄줄 새 나갔다. 부실한 경제로 인해 용병을 고용하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으며 결국 이는 네덜란드의 독립을 허용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 금속화폐를 사용하던 시기에는 금속 생산량에 따라 경기 흐름이 좌우됐었다. 15세기 신대륙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화폐 공급량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경기가 위축된 상황이 지속되었다. 한편 신대륙에서 금이 유입되어 들어오고, 오스만투르크의 영향력 확대로 동방 무역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는 등의 요인으로 16세기에는 물가혁명이라고 불리는 급격한 물가 상승이 일어났다. 

    • 명나라 대 시행된 일조편법은 세금을 은화로 걷는 제도로, 이는 재정 부담을 해결하는데 일조했으나 은화의 수량을 줄였다. 하지만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는 중앙은행이 없어, 서양과의 무역으로 은이 공급되기 전까지 명나라는 은화 부족 현상을 겪었다.

    • 한나라 대, 서역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귀금속의 유출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위축된 경제가 나타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급자족을 택했으나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대처 방법으로 생산량 자체를 불리기 힘들어 이민족의 침략을 허용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중앙은행이 금리로 시장을 밸런싱하는 방법

  1. 기본 원리는 아래와 같다.
    금리를 높이면 투자와 대출이 적어져 시중에 풀린 돈이 적어진다.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킨다.
    반대로 금리를 낮추면 투자와 대출이 많아져 시중에 풀린 돈이 많아진다. 인플레이션을 촉진한다.
    • 대공황은 주식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몰렸을 때 금리를 높이는 정책으로 주식시장이 크게 붕괴한 사건이다.
      외형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주식 투자가 과열되어 투자 매력이 낮은 시기, 금리 상승은 주식 시장의 버블을 크게 제거했다. 이로 인해 레버리지 투자자(빚투)들이 연이어 파산하였으며,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까지 부실화되어 경제 전반에 심각한 불황이 초래되었다. 은행이 파산하고 각 가정에 돈이 흩어지면서 경제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은 매우 줄고 디플레이션이 출현하였다.
       

    • 1933년, 루스벨트 행정부가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대대적인 금융개혁을 시작하면서 금융위기는 진정되었다. 하지만 건전 재정을 유지하려는 노력 때문에 경기 침체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1932년부터 미국의 재정 적자 심화는 지출 확대가 아닌 재정 수입 감소로 일어난 것이었는데,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침체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이 때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 대신 재정 지출을 줄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침체 국면은 길게 이어졌다. 미국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이 1929년의 수준을 회복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뒤였다.
  2.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불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
    • 1933년, 루스벨트 행정부가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대대적인 금융개혁을 시작하면서 금융위기는 진정되었다. 하지만 건전 재정을 유지하려는 노력 때문에 경기 침체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1932년부터 미국의 재정 적자 심화는 지출 확대가 아닌 재정 수입 감소로 일어난 것이었는데,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침체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이 때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 대신 재정 지출을 줄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침체 국면은 길게 이어졌다. 미국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이 1929년의 수준을 회복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뒤였다.

    • 제 1차 세계대전 시기, 완전히 경제가 망가진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만큼 빠르게 강력한 군대를 육성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금본위제 포기 및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 덕분이었다. 이는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더라도, 공격적인 금리인하 및 적극적인 재정확대가 시행되면 급격한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실증 사례 중 하나이다. 

    • 1989년 일본의 버블 붕괴는 장기적인 불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 연준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만 공격적으로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경제 주체들 사이에 디플레 기대 심리가 정착되면 이를 퇴치하기 매우 어려운 반면, 인플레이션은 금리인상을 통해 얼마든지 억제할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이다. (디플레이션 시기에서는 금리를 아무리 낮춰봐야 실질금리가 더 떨어지지 않아 통화정책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미 연준 이코노미스트들의 지적)

맬서스 트랩과 중진국 함정

  1. 맬서스 트랩이란,
    후생은 산술급수(arithmetic)적으로 증가하나 인구는 기하급수(geometric)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복리후생을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사태가 온다는 학설. 산업혁명이 후생의 증가를 급격히 증가시켰으므로 해결되었다. 반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전근대화 시기의 생산을 늘리는 근면혁명을 통해서는 맬서스 트랩을 해결하지 못했다.
    • 근면 혁명은 수확체감
      동양은 기술적인 진보 없이 값싼 노동력을 추가 투입하여 기존 토지에서의 생산량을 극대화시키는 형태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져 맬서스 트랩에 빠지는 양상을 보였다 (근면 혁명). 수확체감.

    • 산업혁명은 수확체증
      반면 영국은 식민지로의 인구 이동 덕분에 인구압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는 높은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이어졌으며 투자 및 발전은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생산량의 폭발적인 증가를 이루어냈고 맬서스 트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2. 중진국 함정이란,
    신흥 국가가 처음에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가 점점 성장 탄력이 둔화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 신흥 국가 시기에는, 보통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 값싼 땅값을 이용해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발판삼아 발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돈이 몰린 이후에도 낮은 임금 수준이 이어질 경우 노동력을 절약할 고급 기술 도입 니즈가 없어지고 성장이 더 이루어지기 어려워진다.

    • 일제 강점기 시기, 조선의 소작료는 수확량의 50%였다. 임대인들은 종자, 농기구 비용을 제하면 30% 미만의 수확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임대인들은 당연히 투자할 수 없고, 지주들은 고리대금업을 하여 큰 수익을 얻고 있었으므로 굳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자본 투자에 열의를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미 군정 시기 토지개혁을 통해 소작인들에게 토지가 상당수 분배되면서 큰 경제성장이 일어났다.

금본위제도의 폐지와 화폐 신뢰도의 부각

  1. 화폐의 조건에서 다뤘듯이 금본위제는 '화폐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보다 더 많은 양의 화폐가 발행될 경우 화폐의 가치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금본위제도는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재정을 필요로 한다거나, 조폐량의 컨트롤을 하고 싶을 때 발목을 잡는다.
    • 1차세계대전 시기, 영국과 달리 독일은 전쟁 자금이 쪼들릴 수 밖에 없었다.
      높은 수준의 금융시장 및 신용도를 가져 채권을 통한 전쟁비용 충당이 용이했던 영국과 달리, 독일은 국채를 중앙은행에 매입하게 하여(돈을 찍어내게 하여) 전쟁 자금을 충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 금본위제는 깨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일련의 사태로
      결국 독일 마르크는 신뢰를 잃었고 화폐가치가 급속도로 하락하여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 1985년, 볼리비아는 이와 비슷한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가 있었다.
      정부의 심각한 재정 적자로 인해 정부는 군대, 광부, 교사들에게의 임금 지불을 위해 국채를 중앙은행에 매입하게 하였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다. 해당 사태를 해결하려면 중앙은행에 자금조달을 의존하는 상황을 끊어내어야 했고, 국가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유류세의 급격한 인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 유류세의 상승 이후 2주만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크게 진정되었다.

    •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는 완전한 금본위제 대신 35달러 = 금 1온스로 보장하되, 다른 나라는 미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고정하는 것으로 합의. 즉 미국의 경제상황이 흔들릴 경우, 본 질서는 큰 타격을 입기 쉬움.
      한편, 이 때 미국 달러의 고평가가 이어지는 탓에 미국 달러는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사태를 겪었고 조폐량을 금본위제에 입각하여 줄이기가 어려웠음. 결국 달러 생산량을 줄이지 못하여 국제 금 값이 1온스에 44달러까지 치솟음.

      화폐에 대한 신뢰성에 문제가 발생하여 타 국가에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짐(이는 뱅크런과 비슷하다). 이에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 폐지. 

    • 금본위제가 폐지되면, 중앙은행의 금리를 통한 시장 밸런싱이 보다 자유로워진다.
      닉슨 대통령의 금본위제 폐지 이후, 달러 가치가 신뢰를 잃게 되자 달러 가치는 폭락했다. 하지만 미국 연준 총재인 폴 볼커의 초고금리 정책으로 결국 인플레를 잡을 수 있었다. 이후 금리를 낮추기 시작할 때에도, 금본위제 하였다면 해외로 돈이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다가왔겠지만 환율이 10%씩 급등락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가 대규모의 자금 유출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오히려 경기가 살아난다는 기대감을 형성하면서 해외에서 자금이 몰리는 효과가 있었다. 금본위제 폐지는 보다 많은 변수를 시장에 개입시켜 투자를 복잡계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한편, 금본위제는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없다.
    • 금리가 인하되면 다른 나라가 투자처로 각광받게 되고, 해외로 돈이 유출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발행할 수 있는 통화량이 정해져 있으므로 경기부양을 하려다 있는 돈이 더 마르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대공황 시기, 미국이 금리 인상을 취했던 이유는 청산주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인 것으로 보여지지만, 금본위제에 대한 당위성 때문에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다는 것도 한 몫 한다고 한다.

    • 독일이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를 급격히 회복하여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금본위제의 빠른 포기와 금리 인하 및 공공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정책 덕분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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