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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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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wing1218 2022. 8. 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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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분명 죽었을 텐데...

니체의 시대에 기독교적 세계관은 붕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기독교에서 말한 '태초에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시니'와 같은 구절들에 의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겠지. 까 놓고 말해, 누구도 진지하게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렇게 신은 죽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종교는 그 형태를 굳건히 유지해왔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던 것일까? 죽은 신은 어떻게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인가? 니체는 이에 대해 '신에 대해 의지하려는 습성'이 인간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불안하다. 삶의 의미, 도덕, 가치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대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라.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압박감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을 가진다면 일종의 프랜차이즈 업체처럼, 삶의 의미, 옳게 사는 법 따위를 모두 정해준다. 그것들을 지키기만 하면 좋은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참 편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신은 분명히 죽었다. 아무도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으며, 받아들이기 위해 현대적인 재해석과 담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죽은 신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것은, 영원불멸하는 것은 어쩌면 신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가치 기준을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신앙) 이고, 이것이 신의 존재를 영원히 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이 죽은 시대, 그리고 죽은 신의 시대에서 니체는 그렇게 생각했다.

죽은 신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세상을 지탱하던 절대가치는 무너져버렸고, 니체는 빨간 약을 먹고 깨어난 네오와 같이 현실에 마주 섰다.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조차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 얽매인 진리밖에 말해주지 못했다. 유대인들의 고통스러운 식민 시절을 인내하기 위한 도덕과 율법이 그의 삶에까지 온전히 적용되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조차 그러할진대, 세상의 어떤 것들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서는 삶의 양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 무엇의 가치 기준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신의 삶의 방향성은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도, 과학도, 그 어떤 것도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신앙이라는 인간적인 습성을 완연히 버리고, 인간을 넘어선 존재,
즉 초인(위버멘쉬)가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니체는 결론지었다.

삶에 대한 공포, 불안 대신, 미지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춤추듯이 즐기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야말로, 불안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의지하고 싶은 충동은 제거되고 나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후의 내용은 위버멘쉬가 되기 위해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에게 말한 내용들을 압축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위버멘쉬로 가는 여정

너희 가치를 직접 창조해라.

초보 투자자가 하루 종일 불안하고, 각종 전문가들의 말에 우왕좌왕 하는 것처럼,

우리는 가치관이 확고하지 않은 분야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타인에게 의존하려 든다.

 

니체는 아마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으면 자꾸 신적인 존재에 삶을 의탁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강력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해라.

신앙을 버려도 될 만큼 강력한 가치관을 형성한다는 것은 인생사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외부에서의 소음은 '오염된 데이터'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자 방송은 투자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다. 또 '내가 책임질 테니 진행하라'는 상사의 말은, 내가 그 지시가 잘못되었을 때 발생하는 커리어적인 손실은 배상해낼 수가 없다. 국가, 종교와 같은 권위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들이 국민, 신도의 가치 기준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선과 악, 도덕과 가치는 변화해 왔다.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신앙이 필요치 않게 되려면, 철저히 자신 관점에서의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외부의 목소리는 내 이익을 100% 보장치 않는 것이다.

 

인생을 즐겨라.

내가 일로 정말 힘들었던 때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의지할 곳을 찾는다는 걸 이 때 느꼈던 것 같다.

 

니체도, 이처럼 삶 자체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여 있다면 신앙을 놓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니체는 보다 인생을 즐기는 방식으로 사고하기를 바랐다.

 

깊이 사유하는 것은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괜히 심각하게 생각하여 부정, 혐오에 휩싸이거나 투덜거리지 말고,

가볍게 춤추고 웃으며 사유하며 나아가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에는 이런 니체의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불안감, 심각함을 타파할 수 있는 사고방식으로 인생은 신들이 굴리는 주사위판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인생사는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으니 무언가를 추진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마라. 

위대한 생각들은 비시대적이다.

우주에는 하나의 시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오늘이 저들에게는 미래적인 것일 수 있다. 니체가 자신과 동류의 인간들을 미래의 아들들이라고 부른 건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니체는 그 시대가 '광기', '탈주', '예외'로 부르는 그런 것들을 시간 상의  불일치로 여겼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쳤다고 하는 것은, 그가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대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신념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실에도 이런 사례가 많다. 고려 무신 집권기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신분 해방 운동을 펼친 만적은 고려 시대 사람들에게는 미친놈이었다. 니체에게 있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와 있지만 오지 않았다고 오해되는 시간이다. 미래는 아무리 늦게 와도 항상 너무 이르다고 여겨진다.

니체가 이러한 '미래성'을 중시한 것은 그가 그 편이 훨씬 위대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이 한 시대 정신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그 시대를 반영할 뿐 그것 자체로 위대해지기는 힘들다. 시대정신을 반영한 작품이 시대성을 잃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대세였던 것이 저물고 모든 것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때, 대세를 '따르던' 것들은 어떻게 되는가? 시류의 일부로 치부될 뿐이다. 한편, 니체는 반시대적인 것도 좋게 보지 않는다. 그것 또한 시대를 의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니체는 시대에 관계 없이 '너의 것을 하라'고 말하는 듯 싶다. 

사실 내가 가진 생각이 미래적인지 어떤지 개인이 판단할 방법은 없다. 단지 현재 시대에 맞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판단할수  있을 뿐이다. 니체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시대가 당신의 것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좋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생각을 제약할 이유는 없다! 그 생각이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라면, 당신의 이름은 시대를 초월해 더 크게 빛날 것이다. 

 

그렇기에, 위버멘쉬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과 친구가 되어라

사랑, 우정. 사람과의 내밀하고 깊은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이런 관계는 어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따르거나 소유되는 것으로는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관계들에서 '양 쪽의 대등함'을 강조한다. 필요하면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을 부정할 수도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위버멘쉬가 되는 길은, 개인이 개인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으로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개인의 수 만큼의 진리가 존재하고, 그들과의 대등한 교류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사고를 내게 제공할 수 있다. 

 

마치며

니체의 말을 요약하면, '자신의 인생에서 신앙이 필요치 않게 되려면, 철저히 자신 관점에서의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지 틀린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의 의견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의견차마저도 니체는 기뻐할 것 같다. 나는 왠지 처음 투자할 때의 경험들과 관련해서 생각하니 잘 이해가 되었다.

 

스스로의 삶을 경영하는 것에 있어 주체성을 잃지 말라는 것은 멋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직장의 요구와 개인 커리어 상의 이득이 상충할 때가 종종 있다.

이로 인해 괜시리 심각해지고 스트레스만 잔뜩 받는 경우가 많은데,

니체가 시원시원하게 답해주는 듯 하여 기분이 좀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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