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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전' 형태의 배틀로얄에 대한 단상

[기록] Game Design

by brightwing1218 2020. 7. 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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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그라운드>의 성공 이후, 배틀로얄 장르라고 하면 우리는 이런 모습을 쉽게 떠올리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시작해 낙하산으로 떨어지고, 왠지 모르지만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총기들을 주워 총격전을 벌이는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그러했고, 포트나이트도 그러했으며, 에이펙스도, 최근 나온 콜오브듀티:워존도 그랬다. 어떻게 보면, 배틀로얄 장르에서 이러한 모습을 갖추는 것은 정석 혹은 국룰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듯이, 비슷비슷한 맛을 가진 게임만 줄창 등장하다 보면 몇몇 게임들은 '삐딱선'을 타기 마련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아마 요 1년 새, 배틀로얄에는 위의 왕도를 따르지 않는 하위 장르 게임들이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왜 총으로만 싸워야 해? 라는 말을 하듯, 근접전 형태의 교전을 베이스로 깔고서는 말이다.

무협 배그라고 불리던 무협 X. 지금에서는 이 게임이 제일 배틀로얄 장르에 부합한 시스템을 가진 듯

필자가 '근접전' 형태의 배틀로얄을 처음 본 것은 중국에서 만든 일명 '무협 배그'가 스트리머들의 입소문을 탔을 때였다. 그 때는 '이런 것도 제대로 만들어지면 꽤 재밌겠는데?' 정도 수준으로 조악한 모습이어서,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오는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몇 국내 게임사들이 이런 게임 포맷을 상용 게임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공개하거나 실제로 서비스를 개시하는 모습에 꽤 흥미가 동했던 기억이 난다.

 

<검은사막> 베이스로 만들어진 섀도우 아레나

그렇게 몇몇 게임은 해 보고, 아직 나오지 않은 게임들은 플레이 영상으로 접했는데...총격전 베이스의 배틀로얄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 서로 짜 놓기라도 한 듯, 게임 종반까지 누적되는 성장이라는 요소를 게임 시스템으로 채용했다는 점이다. 한 번 올라간 레벨은 떨어지지 않고, 장비 또한 좋은 것을 얻으면 영원히 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하는가? 바로, 교전 시 '전투력의 격차'이다. 전투 유지력이나, 손패에 써먹을 수 있는 전술적 선택지가 많다는 것 이외에, 그냥 쌩 전투력이 차이가 난다. 저 친구가 나보다 파밍을 더 잘해서, 한 방만 때려도 나를 골로 보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다. 배틀로얄의 느낌보다는 AOS를 데스매치로 진행하는 느낌이 더 강하지 않은가?

레벨이 7과 3. 스쳐도 죽는다

위와 같은 포맷을 공통적으로 취하는 근접전 형태의 배틀로얄 게임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아니, 애초에 이 게임을 배틀로얄 장르로 묶는 게 맞는 것일까? 총격전 형태의 배틀로얄에서 느껴졌던 핵심 경험은, 위의 요소로 인해 상당히 약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끊임없는 긴장의 유지'가 되지 않는다. 

총격전 형태의 배틀로얄에서는, 파밍이 덜 됐다는 것이 승률의 급격한 저하를 의미하지도 않고(=기회를 잘 노리면 죽일 수 있다), 파밍으로 인한 우위는 교전을 통해 점차 깎여나간다. 그렇기에, 어떤 플레이어를 보든 일단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파밍 수준이 힘의 차이를 의미하게 된 근접전 형태 배틀로얄은, 우위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두 번째로, '영속적인 결핍'의 경험 또한 유지하기 힘들다.

교전을 지속해도 가치가 보존되는 레벨과 장비가 있다는 것. 이것 하나로 설명이 충분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위의 두 개를 묶어서 생각해보면, '규칙적으로 누군가 우위를 점한 상태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 결론인데, 이게 배틀로얄의 범주에 묶어도 되는 경험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러한 걱정을 어떻게든 해소해 줄 수 있다면, 배틀로얄으로 성립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자동적으로 스테이지를 점차 좁혀가는 자기장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나, 암살 등 강한 적도 지형지물을 이용하거나 기회를 노려 이길 수 있는 시스템도 딱히 보이지 않아, '파밍 잘 된 사람은 긴장을 놓고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게임들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자기장 시스템! 지는 입장에서는 시간을 벌고 파밍을 해, 전투력 격차를 좁혀야 교전이 성립할텐데, 점점 경기장이 줄어드니 벌어진 스펙 격차는 더 뒤집기 어려워 보인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자기장이 닫히지 않고, 더 이상 자기장을 좁히거나, 승기를 굳히려면 행동의 자유를 희생해서 뭔가를 하게 만드는 방안은 어떨까? 선두 플레이어가 다른 친구들 못 도망가게 막는 동안, 파밍하거나 기습을 노릴 수도 있는 거지.

 

밸런스를 잘 잡아서 이런 문제들에 잘 대처하면 된다!라고 반론한다면, 맞다. 그것도 해답이다. 단지, 굳이 룰을 변형시켜서 이 문제를 밸런스까지 끌어들여서 풀어야 했는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얘기다. 배틀로얄로써의 긴장감을 희생해서 유저 경험적인 이득을 얻어낼 수 있었다면 OK. 한편으로, 총격전의 전투 경험이 싫었다라고 하면 또 OK가 될 수 있겠다.

 

한편, '스폰된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다들 채용하고 있는 시스템인지도 매우 궁금하다. 왜 일상적인 아이템을 얻는 데에도 미니언들을 잡도록 해야 했을까? 단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근접 전투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기습적인 공격을 걸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미니언 같은 거에 집중한 채로 대로변에서 칼 소리 내면서 퍽퍽 싸우고 있으면, 적 입장에서 알아채기가 쉬우니까 말이다. 그래도 스킬 같은 부분으로 풀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꼭 미니언을 사용한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싶긴 하다.

 

주절주절 길었는데, 요약하자면 영속적인 전투력의 증가를 허용한 것이 총격전 형태의 배틀로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요소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AOS를 데스매치로 진행하는 느낌에 가깝게 플레이가 형성되지 않았나, 라고 추측해본다. 개발자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내린 결론들이 엇비슷한 게임 형태로 귀결되는 것이 흥미롭다고 느끼면서, 그 치열한 고민이 어떻게 이런 형태의 게임 플레이 디자인을 낳게 되었는지도 알고 싶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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